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제가,
명필의 이야기를 더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못난 글씨라도 결국은
마음이 흔적을 남기듯,
천 년 전 사람들의 글씨 속에도
그들의 삶과 믿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를 떠올려 봅니다.
높고 웅장한 비석 위에 새겨진 글자는
날카롭고 굳센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그 글자들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왕이 세상을 호령하던 힘 그 자체였습니다.
백제의 사택지적비에는 다른 숨결이 있습니다.
곡선이 부드럽고, 문장은 유려합니다.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답게
글자마저 자비롭고 세련된 품격이 묻어납니다.
신라의 진흥왕순수비를 보면,
단단한 해서체가 준엄하게 다가옵니다.
왕의 순수 행차를 기록하면서
나라의 영토 확장과 왕권의 정당성을
글자 하나하나에 새겨 넣었습니다.
삼국의 글씨는 각기 달랐지만,
모두 돌 위에 영원히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권력, 신앙,
그리고 시대의 염원이 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려에 이르면,
비로소 우리 역사에 “해동서성(海東書聖)”이라
불린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김생입니다.
김생은 당나라 왕희지의 필법을 사숙하면서도
점차 자신만의 온화하고 기품 있는 글씨를 완성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필적은 거의 없지만,
후대의 모든 서예가들은 그를 스승처럼 존경했습니다.
글씨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인품과 학문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생의 글씨에는
유교적 품격이 배어 있다고들 말합니다.
불교가 깊이 뿌리내린 고려,
그 속에서 김생의 글씨는
학문과 신앙을 동시에 떠받치던 정신적 기둥이 되었습니다.
삼국과 고려의 글씨를 바라보며,
저는 제 “토룡체”를 떠올립니다.
비록 삐뚤빼뚤하고 못난 글씨지만,
그 안에도 제가 살아낸 흔적이 남아 있듯,
그들의 글씨에도 시대와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글씨란,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가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오늘 제가 남기는 이 글도
천 년 뒤 누군가의 눈에
삐뚤빼뚤한 흔적이 아닌
한 시대의 마음으로 읽히기를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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