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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간과의 대화

내가 닿지 못한 세계를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길을 배워보고자 하는 마음.

by the present 2025.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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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글씨를 보고

사람들은 제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다 봅니다.

 

너무나 의외라면서요.

​

물론, 파킨슨 질환증세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워낙 제 글씨가 악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

이 같은 글씨체를 일명 “토룡체(吐龍體)”라고도 하지요.

​

마치 용이 불을 토해내듯 삐뚤빼뚤 흩날려,

쓰고 나서도

그 글씨를 쓴 나조차도

도무지 무슨 말을 써 놓은것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

ㅎㅎㅎ

​

​

정신자세가 흐트러져서 일까요?

아니면 손재주가 없어서-요?

​

아닙니다.

​

돌이켜보면,

마음이 늘 바빴기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

제가 자라던 어린 시절엔

지금처럼 조기교육이란 게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

​

입학 전 준비라 해봐야

겨우“가갸거겨” 몇 자,

​

​

앞서가는 집이라해도 천자문에

조금 더 나아가

사자소학, 명심보감 몇 구절 정도가 대부분이였지요.

​

​

국민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글자 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

자모를 쓰고,

읽고, 또 쓰고.

​

숙제도 늘 따라 쓰기였는데,

제 마음은 언제나 조급했습니다.

​

​

“얼른 끝내야지. 그래야 다른 일을 좀 더 할 수 있을거야.”

​

​

그 마음 때문에 저는 늘 글씨를 서둘러 적었고,

그 습관이 쌓여

저를 오늘날 토룡체의 대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

​

​

악필이라 부끄럽긴 합니다.

​

하지만,

그 토룡체 속에도 제 마음이 있다는 것.

​

​

어린 시절의 조급함,

먹고살기 바빴던 시대의 결,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제 삶의 흔적.

​

​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명필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

​

비록 내 글씨는 서툴고 우습지만,

그들의 글씨를 통해

사람과 시대,

인연을 배우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

​

​

못난 글씨에서 시작된 이 여정이,

결국은 우리 글씨의 뿌리와

그 시대의 이야기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

​

오늘은, 이렇게 제 고백으로 1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

명필이 아닌 제가

오히려 더 마음이 끌려버린

명필들의 이야기.

​

​

다음 편부터는 삼국과 고려,

돌에 새겨진 글씨들을 따라

우리 역대 명필들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겨가 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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