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지나던 모세가
어느날
한 양치기의 기도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양치기는 순박한 말로
하느님께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의 신발을 꿰매 드릴게요.
옷도 빨아 드리고,
우유도 데워 드릴게요….”
그 기도를 엿듣던 모세는 그만 분노하고맙니다.
.
그리고는 단숨에 그 소년앞으로 다가가
이렇게 이야기하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어찌 그리 무례하더냐,
마치 인간을 대하듯 말하더구나!”
꾸지람을 들은 양치기는
그만 부끄러움과 슬픔에 잠겨 황급히 모세곁을 떠나갑니다.
그날 밤,
하느님이 모세를 책망하십니다.
“나는 말투를 보지 않고 마음을 본다.
양치기의 말은 서툴렀지만 사랑은 진실했다.
사람마다 나에게로 오는 길이 다르다.
너는 그의 길을 막았다.”
모세는 사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황급히 양치기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이미 양치기는
말과 형식의 껍질을 벗고 더 깊은 사랑의 자리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문자(형식)와 영(사랑)의 율법이 다르며,
하나님께 닿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
결국 진실한 마음이 율법의 핵심인 것을.....
.
.
.
새벽 산길을 오르며 혼잣말처럼 기도할 때가 있다.
말은 종종 더듬거리고, 호흡은 자주 가쁘다.
어떤 날은 “온 우주의 주인이여”로 시작하고,
어떤 날은 그저 “살아있게 해주세요”로 끝나버릴때도 있다.
〈모세와 양치기〉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 기도의 초라함 때문에
더 이상 움츠려들지 않기로 했다.
비록 양치기의 기도는 서툴렀지만
그 사랑은 분명했다...
모세의 꾸지람은 옳았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자비였더라면......!
모르긴해도 아마 하느님은
기도의 문장을 채점하지 않으시고,
기도하는자의 심장을 살피실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상처를 받게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대개 형식이 진실을 가릴 때였던 것 같다.
예의를 갖춘 말 뒤에 무심(無心)이 숨어 있고,
정교한 기도문 뒤에 빈 마음이 서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늘 앞에서 가장 예의 없는 태도가 아닐까....
나는 오늘도
또 배운다.
기도는 입술에서 시작되지 않고
삶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려 애쓰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으려 애쓰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걸음을 떼는 그 순간,
그 모든 동사가 이미 기도임을.....!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기도한다.
문장을 다듬기 전에 숨부터 고르고,
정답을 찾기 전에 사랑을 먼저 꺼내 보자고.
하느님이 들으시는 것은 웅변이 아니라 진심의 박동이니.
광야에서 모세가 다시 양치기를 찾아가 사과하듯,
나 역시 내 안의 양치기에게 사과한다.
“그동안 서툴다고,
모자라다고,
믿음이 얕다고
나를 너무 많이 꾸짖었구나.”
그리고 내 안의 모세에게도 부탁한다.
“진리를 지킬 때에도 사랑을 잊지 말자고.
율법의 문자에 불을 붙이는 것은 언제나 자비라고.”
서툴러도 괜찮다.
제대로 말하지 못해도,
숨소리 하나,
눈물 한 방울,
그 모든 것이 하늘에 닿는 완전한 문장이 된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이듯이.
그 마음으로 걷는 한,
우리는 이미
하느님께로 가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_^
누군가의 서투른 표현을 만났을때,
속도의 기준 대신에
마음의 온도를 떠올려 보는 오늘이시기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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