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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

thepresent선물 님의 블로그 2025. 6. 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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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그 유명한 시구절.

존재와 인식,

관계의 시작에 대한

심오한 선언이다.

관찰이 존재를 만든다고 한다.

양자역학에 “관찰자 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입자의 상태는

그것이 관측되기 전까지는

확정되지 않는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빛은 파동처럼 퍼지다가,

관찰자가 시선을 두는 순간,

하나의 입자로 ‘굳어져’ 나타난다.

우주는

누군가가 바라보기 전까지,

끝없이 가능성일 뿐이다.

그 말은 곧,

우리가 바라보는 순간에야

세상은

비로소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기에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며,

그 존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이 세계 안으로 초대하여

나와 관계 맺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곧,

"당신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라는 선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존재는 타자의 인식 속에서 자각된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지만,

당신이 나를 알아보지 않으면

나는 그저

흐릿한 파동으로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한 인간이 태어나 이름을 갖고,

불려지고,

기억되고,

그렇게 세상에 "자리"를 잡아간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시선 아래에서

“나는 나다”라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연대는

"존재를 바라보는 일"

"이름을 불러주는 일"

"당신을 인정하는 일"

그것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존재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누군가의 눈빛과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이 존재를 꽃피우게 하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

그것은

단순히 존재를 알리는 일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의 세계에 초대하는 일이고,

서로의 기억 속에 작은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 씨앗은 시간이 지나 내가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작은 나무 하나에도,

노을에 빛나는 구름에게도,

외로움 속에 움츠러든 이웃에게도.

“당신은 나에게 꽃입니다.”

그 말을, 그 시선을, 그 따뜻한 부름을

아끼지 말자.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부름 속에서,

비로소 나로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 어떤 존재도

자기 스스로만으로는 완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