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즐겁게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신의 마음,용서

thepresent선물 님의 블로그 2025. 6. 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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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말은 쉽지만,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는

가장 어려운 결단입니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일.

 

나를 무너뜨린 기억 앞에서

“이제는 흘려보내겠어”라고 다짐하는 일.

 

그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는

사랑보다 더 어렵고,

 

잊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받는 것보다 더 외로운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왜 용서를 어려워할까요?

 

왜냐하면,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날카로웠던 침묵까지도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겨집니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묻지 않으십니다.

 

 

“네가 얼마나 상처받았느냐?”가 아니라,

“네가 그 상처를 어떻게 안고 살아가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기억하면서도

그 기억 위에

‘사랑의 선택’을 덮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그 기도는

억울함을 누르는 억지가 아니라,

가장 절실한 자비의 고백이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위한 자유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나를 매일 다시 찌릅니다.

 

반복되는 분노와 슬픔,

억울함과 자책은

나를 묶고, 내 삶을 잠식합니다.

 

 

용서는 그 고리를 끊는 일입니다.

 

나를 갉아먹는 기억에 대해

“이제 그만” 하고 말하는 해방의 선언입니다.

 

 

 

용서란,

신의 마음을 가장 깊이 닮는 순간입니다.

 

 

신은

우리가 실수했을 때,

넘어진 자리에서조차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신의 마음은

기억하되 미워하지 않는 자비.

 

상처를 품되 버리지 않는 품.

조건 없는 회복의 문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우리도 닮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단지 ‘용서한 사람’이 아니라,

신의 사랑에 다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누구를 용서하는 것보다,

제 자신부터 용서하고 싶습니다.

 

내가 지나온 어리석음,

놓쳐버린 사람들,

끝내 하지 못한 말들까지도

 

하나하나

당신의 은혜 안에서

풀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용서란

하나님의 사랑에 닿는 순간이며,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빛나는 결정입니다.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고,

그 누구의 죄에도 붙들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의 사랑 안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다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용서는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기억한 채,

 

그 위에 사랑을 선택하는

가장 신적인 행동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