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닿을 수 있는 신의 마음,용서
용서란,
말은 쉽지만,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는
가장 어려운 결단입니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일.
나를 무너뜨린 기억 앞에서
“이제는 흘려보내겠어”라고 다짐하는 일.
그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용서는
사랑보다 더 어렵고,
잊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받는 것보다 더 외로운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왜 용서를 어려워할까요?
왜냐하면,
인간은
기억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날카로웠던 침묵까지도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겨집니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묻지 않으십니다.
“네가 얼마나 상처받았느냐?”가 아니라,
“네가 그 상처를 어떻게 안고 살아가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기억하면서도
그 기억 위에
‘사랑의 선택’을 덮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그 기도는
억울함을 누르는 억지가 아니라,
가장 절실한 자비의 고백이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을 위한 자유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나를 매일 다시 찌릅니다.
반복되는 분노와 슬픔,
억울함과 자책은
나를 묶고, 내 삶을 잠식합니다.
용서는 그 고리를 끊는 일입니다.
나를 갉아먹는 기억에 대해
“이제 그만” 하고 말하는 해방의 선언입니다.
용서란,
신의 마음을 가장 깊이 닮는 순간입니다.
신은
우리가 실수했을 때,
넘어진 자리에서조차
“그래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신의 마음은
기억하되 미워하지 않는 자비.
상처를 품되 버리지 않는 품.
조건 없는 회복의 문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우리도 닮을 수 있다면....
우리는 단지 ‘용서한 사람’이 아니라,
신의 사랑에 다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누구를 용서하는 것보다,
제 자신부터 용서하고 싶습니다.
내가 지나온 어리석음,
놓쳐버린 사람들,
끝내 하지 못한 말들까지도
하나하나
당신의 은혜 안에서
풀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용서란
하나님의 사랑에 닿는 순간이며,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빛나는 결정입니다.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고,
그 누구의 죄에도 붙들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의 사랑 안에서
자유로운 존재로
다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용서는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기억한 채,
그 위에 사랑을 선택하는
가장 신적인 행동입니다.
감사합니다.
